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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면

장사진 의병장 유적

  • 작성자 : 군위닷컴
  • 작성일 : 04-10-21 18:45
  • 조회수 : 2,285

▶경상북도 기념물 제122호

소재지: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554

장사진 장군은 구미 인동 출생으로 어릴 때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로 이사왔다.
임진왜란 초기 인동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이 군위경계까지 침범하여 약탈과 살인 등을 저지를 때 군위군의 교생신분으로 있으면서 약관의 나이로 의병을 일으켜 군위. 인동지역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592년(선조 25년) 9월  적 복병에 포위 당하여 전사하였다.
선조께서 그 충성을 찬양하시어 수군절도사의 벼슬을 내렸으며 초본징비록과 선조수정실록 에서는 경상도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평가 하였다.

경북지방에 주둔한 왜적은 제3차 경주전투 참패로 경주 성을 버리고 서생포로 퇴각하는 등 우리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는데 대구에 본 군을 두고 있던 왜군이 인동부근에도 주둔하고 있어서 군위 경계까지 침범하여 약탈과 살인 등의 만행을 저지를때 장사진장군은 의병을 일으켜 복수군(復讐軍)이라 하여 왜적을 물리치고 적 복병에 포위당하여 전사할 때까지 군위지역의 인동부(仁同府) 백성들은 안전하였다.
 
1753년(영조 29년)에 당시 군수 남태보가 지은 "국상증수사 장사진 고리비"의 비문에 의하면 장사진은 인동 장씨로 죽정 장잠의 손자이며 담략과 무용을 갖추어 임진왜란 때 군위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근 6개 성씨의 주민들이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당(祠堂)을 지어 충렬사라 하고 매년 한식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지금도 오천리에는 그당시의 장군이 만든 장군천(將軍泉)이있다. 영조 29년(1753) 군위 현감 남태보가 고리에 높이 110cm, 폭 88cm의 화강암으로 된 유허비를 세우고 그 행적을 새겼다. 충렬사는 창건연대 미상이나 고종 5년 (1868) 서원철패령으로 훼철되자 1889년 충렬사 뒷 편에 재단을 만들고 초가삼간을 세웠다가 1937년 현재의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으로 중건하였으며 1999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오천리에 있는 충렬사(忠烈社)는 1997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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